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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내사랑 못난이’ B급제품 전성시대

[편집자주] 코로나19(COVID-19) 장기화로 인한 불황의 그늘에서 ‘못난이 식품’ ‘리퍼브 제품’ 등 이른바 B급 제품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조금 상처가 났다고, 이월이 됐다고 그동안 외면받던 제품들에 소비자들은 더욱 열광한다. 먹고 쓰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뿐 아니라 가격까지 저렴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B급 제품의 전성시대다. B급 제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파워볼사이트

리퍼브 전문매장 운영사 올랜드아울렛 매장 전경. 가전과 가구를 취급하는 리퍼브 전문 매장으로, 전국에 1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리퍼브 전문매장 운영사 올랜드아울렛 매장 전경. 가전과 가구를 취급하는 리퍼브 전문 매장으로, 전국에 1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리퍼브 제품’ ‘못난이 식품’ 등 정상품에 비해 약간 하자가 있는 이른바 ‘B급’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장기 불황에 코로나19(COVID-19)까지 겹치면서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정상 제품에 준하는 리퍼브 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다. 리퍼브 시장이 커지면서 유통가도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1조원 넘어선 리퍼브시장에 속속 진입하는 기업들━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리퍼브 시장은 지난해 1조원 규모를 넘어섰고,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리퍼브는 ‘다시금 새롭게 꾸민다’라는 뜻을 지닌 ‘리퍼비시'(Refurbish)의 줄임말이다. 즉 리퍼브 제품은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 △제조·유통 과정에서 미세한 흠집이 난 제품, △단기 전시용으로 사용했던 제품을 보수 및 재포장한 제품, △여러개의 파손된 제품에서 정상 부품만 추출해 재조립한 제품 등을 뜻한다.

제조사에서 직접 재포장해 새 제품처럼 판매하는 것이므로, 정상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정상 제품으로서의 상품 가치는 훼손됐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이다. 정상품의 반값은 흔하고, 할인율이 90%에 달하기도 한다.

AJ전시몰, 올랜드아울렛 등 리퍼브 제품을 취급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2017년 100개에서 지난해 400여개까지 확대될 정도로 관련수요가 늘고 시장이 커지면서 유통가도 리퍼브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롯데쇼핑이 대표적이다. 롯데쇼핑은 아울렛 매장을 통해 리퍼브 전문점을 다수 운영 중이다. 2014년 파주점에 처음으로 리퍼브 전문 ‘전시몰’을 입점시켰는데, 월평균 1억원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알짜’ 매장이 되자 리퍼브 시장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파워볼게임

롯데쇼핑은 현재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파주·이천점과 롯데아울렛 광교점, 롯데몰 광명점 등 네 곳에서 리퍼브 용품 전문점인 ‘프라이스홀릭’ ‘리씽크’ ‘올랜드’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각 매장의 매출액은 월 7000만원~2억원인데, 이는 백화점 내 유명 브랜드 수준과 비슷하다.

e커머스 업계도 리퍼브 시장 선점에 열성이다. 티몬은 지난해 4월부터 매달 24일을 ‘리퍼데이’로 정하고 리퍼전문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기가 높자 티몬은 지난해 11월, 상시로 리퍼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리퍼창고’ 카테고리도 만들었다.

지난 1~5월 기준 티몬 리퍼 상품 관련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52% 상승했다. 티몬 관계자는 “리퍼브 제품이 새 상품과 다를 바 없다는 소비자 인식이 확산되면서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더 제품군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콧대 높던 가구 유통공룡 이케아도 한국 진출 6주년을 맞은 올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중고 리퍼브’ 등을 제시했다. 고객이 사용해온 이케아 가구를 매장에 다시 판매하면, 이케아가 이를 수선해 재유통시키는 구조다.━실용적 소비성향 타고 리퍼브 전성시대 열린다━업계는 앞으로도 리퍼브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성능과 만족감만 준다면 리퍼브 상품도 망설임없이 구매하는 실용적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소비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좋은 브랜드를 합리적 가격에 판매하는 리퍼브 매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향후에도 실속파 고객들을 겨냥한 전략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파워볼실시간

전문가들도 향후 꾸준한 리퍼브 시장 확대를 예상한다.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터넷 발달로 정보 교류가 활발해졌단 이유에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돈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똑똑한 소비’를 하며 리퍼브 인기가 치솟았다”면서 “이전에도 리퍼브 물건들은 있었지만, 어디에서 판매하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장 확대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발달로 리퍼브 판매처를 찾기 쉬워졌고, 점차 소비자가 몰리게 됐다. 업계도 시장 수요를 인식한 만큼 점차 더 시장이 커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리퍼브 공급은 제한적이니 앞으로 리퍼브 제품이 점차 오를 수 있고, 제품군도 확대될 것이라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씽크 '일산 재고센터' (리씽크의 창고형 오프라인 매장) /사진=리씽크 제공
리씽크 ‘일산 재고센터’ (리씽크의 창고형 오프라인 매장) /사진=리씽크 제공

실제 시장 확대에 따른 리퍼브 제품군 확대도 눈에 띈다. 단순히 전시품, 흠집이 있는 물건 등을 의미했던 리퍼브 제품이 현재는 이월 상품, 재고 상품 등까지 의미하는 말이 됐다. 재고전문쇼핑몰 리씽크는 리퍼브 제품 뿐만 아니라 재고상품, 유통기한 임박상품 등을 중점적으로 판매한다.

리씽크 관계자는 “다양한 리퍼브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기업·환경·소비자를 잇는 재고의 선순환을 구현하고, 가치소비를 이룩한다며 “특히 재고가 묶여 ‘품맥경화'(제품이 시장에 돌지 않고 재고로 묶여있는 상태)가 발생한 기업들에 문제를 해결해주는 의의도 있다”고 말했다.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코로나19로 문 닫는 꽃가게가 남긴 ‘의미’..”아빠 승진 때도, 애인에게 줄 꽃도 여기서 샀어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이대 꽃집에서 꽃을 든 기자. 꽃이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늘 조마조마했다./사진=꽃집 사장님
이대 꽃집에서 꽃을 든 기자. 꽃이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늘 조마조마했다./사진=꽃집 사장님

“기자님, 장미는 가시가 많아요. 손 조심해요.”

우아하게 꽃을 들 줄 알았지, 장갑부터 낄 줄은 몰랐다. 장미꽃 생화(生花)엔 코뿔소 뿔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그득했다. 쉴 새 없이 찔리기 일쑤라 잘 손질해야 했다. 노란색 가시 제거기를, 장미꽃 줄기에 끼워 위에서 아래로 슬며시 쓸어내렸다. 그러니 가시가 투두둑하고 떨어졌다. 힘을 적당히 주는 게 관건이었다. 너무 세게 했다간 줄기가 다친다기에 진땀이 났다.

아침 7시부터 꽃집은 꽃을 매만지느라 그리 분주했다. 무성한 잎을 정돈하고, 줄기는 매끄럽게 해주고, 부실하거나 다친 꽃은 빼줬다. 싱싱하고 예쁜 꽃만 손님에게, 그러니 어째 버리는 게 더 많았다. 아까워 주저했으나, 꽃집 사장님 김하나씨(35)는 과감했다. “괜찮아요! 자르세요! 버리세요!” 나도 모르게 계속 혼잣말을 하게 됐다. “아이고, 미안하다.” 실은 김씨도 같은 말을 옆에서 반복했다. “꽃아, 미안해.”

꽃집 안에 있던 나무. 사철나무는 아니지만, 사장님이 설명서만 꽂아둔 것이다. 사계절 푸르렀으면 하는 바람으로 곱게 찍어 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꽃집 안에 있던 나무. 사철나무는 아니지만, 사장님이 설명서만 꽂아둔 것이다. 사계절 푸르렀으면 하는 바람으로 곱게 찍어 보았다./사진=남형도 기자

활짝 핀 꽃이 영원하진 않듯, 이 곳도 그랬다. 이화여대 앞 다정한 꽃집은, 이제 3일 후면 문을 닫는다. 4년간 김씨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건만, 코로나19로 피해가 극심했다. “단골이 많아서 그나마 전 오래 버텼지요. 손님들에게 ‘날 먹여 살린다’고 했었어요.” 하루가 무섭게, 문 닫는 가게가 수두룩하다며 김씨는 그리 말했다.

곧 사라진단 게 알려지자 아쉬워하는 이가 참 많았다. 이대 학생 조은혜씨도 그랬다. 그는 내게 이리 제보해왔다. “학교 앞 단골 꽃집이 있는데 정말 좋은 가게”라며 “단골들도 많은 곳”이라고.

좋은 꽃집이라며, 제보해 온 손님의 마음이 이랬다./사진=남형도 기자 SNS 캡쳐
좋은 꽃집이라며, 제보해 온 손님의 마음이 이랬다./사진=남형도 기자 SNS 캡쳐


조씨의 SNS엔 대학 4년을 마무리하는 졸업식 사진이 있었고, 그 자리를 빛낸 건 화사한 연분홍빛 예쁜 꽃다발이었다. 부모님께 드린 어버이날 카네이션도, 설레는 겨울 크리스마스 꽃도, 자신을 위한 귀여운 토끼 모양 꽃도, 모두 단골 꽃집에서만 샀다. 삶의 기억하고픈 순간을 오롯이 함께했구나 싶었다.

그 꽃집에 조심스레 하루를 함께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김씨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저나 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참여해보고 싶다”며 수락했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남기고 싶단 뜻이리라. 그 말에 담긴 마음에, 한 가게가 남긴 의미를 잘 담아내리라 맘 먹었다. 너무 괴롭거나 슬프거나 상실감만 남는 게 아닌.━새벽 4시, 꽃을 위해 일어나는 시간

꽃만 보면 안 되고, 잎사귀를 봐야 한다고, 하나하나 빼서 보면 망가진 게 보인다며. 특히 "줄기에 상처가 있으면 오래 못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인들이 싫어해도 빼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좋은 꽃을 손님들에게 줄 수 있다며./사진=남형도 기자
꽃만 보면 안 되고, 잎사귀를 봐야 한다고, 하나하나 빼서 보면 망가진 게 보인다며. 특히 “줄기에 상처가 있으면 오래 못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인들이 싫어해도 빼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좋은 꽃을 손님들에게 줄 수 있다며./사진=남형도 기자

꽃집 문을 오전 10시에 연다고, 사장님이 그 때까지 자는 게 아녔다.

김씨는 14일 새벽 6시에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자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꽃을 산단다. 알람을 맞춰 잠에서 깬 시간은 새벽 4시 30분. 까치집이 된 머리를 물로 대충 매만지고 나왔다. 바깥은 컴컴한 어둠이었고, 가을 초입이라 제법 쌀쌀한 기운에 남은 잠을 쫓았다.

역 지하 1층에서 김씨를 만났다. 진한 청바지에 긴 팔 티셔츠, 니트 조끼를 입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그는 소탈하게 웃으며 첫인사를 건넸다. 나보다 더 빨리,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달려왔단다. 별 얘기가 없는데 기사가 될지 걱정이란 그에게, 그저 그걸 쓰고 싶은 거라며 안심시켰다.

익숙한 듯 빨리 걷는 김씨를 따라 꽃시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많이 붐비진 않았다. 보통 밤이나 새벽에 오는데, 새벽은 그나마 인파가 좀 적다고 했다. 사람이 많으면 꽃이 다칠까 걱정이어서, 이 시간엔 그게 덜해 좋다고 했다. 꽃을 예약한 시간이 이르면 밤늦게 오기도 한다. 그럴 땐 꽃을 산 뒤 가게로 가져가 손질한 다음, 다시 집에 가서 자고 나온다. 남들은 몰랐을 부지런한 정성이었다.

꽃을 산 뒤엔 차례로 품에 안았다. 조금 많아졌다 싶으니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실었다. 그리고는 다시 꽃을 사러 갔다. 왜 한꺼번에 안 하냐는 물음에 그는 “꽃을 너무 많이 안고 돌아다니면, 꽃의 얼굴이 상할까 싶어서”라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씩, 많을 땐 서너 번씩 오간 뒤에야 꽃을 다 산다고 했다.━꽃을 보면 ‘위로’가 되어서, 시작한 꽃집

김씨가 만든, 아름다운 꽃바구니./사진=꽃집 SNS 캡쳐
김씨가 만든, 아름다운 꽃바구니./사진=꽃집 SNS 캡쳐

꽃을 다 사고 이대 앞 꽃집으로 향하며, 4년 전 이야길 들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는지.

10대 땐 식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단다. 화분 키우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식물학과가 이과인 걸 알고 포기했다. 역사를 좋아해 대학교 땐 사학을, 대학원에선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여전히 꽃집 사장이 있었어요.” 밀려났지만 품어둔 꿈이었단 의미였다.

첫 직장은 박물관이었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내 몸보다 유물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 게 힘겨웠다.

그러다 아는 대학원 언니 권유로, 일주일에 두 번씩 꽃을 배웠다. 위로를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도 덜고, 집에 오면 내 손으로 만든 꽃을 또 보고, 그게 큰 힘이 됐다.

취미로 5년을 하고, 꽃집을 내기로 맘먹었다. 그가 꽃을 보며 위로를 받았듯, 누군가에게도 그랬으면 했다. 그러나 남편은 물론, 친정과 시댁 가족들 모두 반대했다. “멀쩡한 직장 놔두고 왜 그러느냐, 장사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고 뜯어말렸다.

그러나 좋아하는 걸 차마 막지 못했다. 남편이 결국 맘을 바꿔 아내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실패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보자. 뒤늦게 했다가 얻는 상처가 더 클 거야. 하고 싶은 걸 해.” 사랑하니 어쩌지 못하는 따스한 응원이었다. 김씨는 “일 마치고 집에 와 다리 아프다 하면 아무 말 없이,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준다”며 “영원한 내 편이고, 평생 친구”라며 남편에게 고마워했다.

반대하던 다른 가족들도 나중엔 모두 김씨를 응원했다. 가게가 바쁜 날엔 항상 달려와주는 친정 어머니, 걱정도 많지만 며느리 고생 안 시키려 늘상 배려해주는 시어머니까지. 그는 가족에겐 늘 진심으로 고맙다며, 깊이 표현하고 싶어했다.━‘아름다운 인생’, 가게 이름을 짓고

오전 7시쯤, '아름다운 인생'이란 뜻을 가진, 이대 꽃 가게에 도착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오전 7시쯤, ‘아름다운 인생’이란 뜻을 가진, 이대 꽃 가게에 도착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대 앞 꽃집에 도착했다. 까만 간판에 반듯한 하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라 벨르 비(la belle vie)’라고.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인생’이란 뜻이란다. 의미가 좋다고 하니, “남편과 며칠 밤을 고민해 지은 이름”이라며 미소 지었다. 꽃 주전자 위에 핀 튤립 세 송이가 그려진 로고도 정겨웠다. 그 또한 오래 고민해서 정한 거란다. 아무렴, 새로 시작하는 맘이 오죽 애틋했을까.

꽃을 가게에 들이며 내부를 둘러봤다. 흰색과 민트색, 청록색 벽이 산뜻했다. 그 역시 김씨와 남편이 일일이 롤러로 칠했다. 텅 빈 가게에서,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 칠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손때 묻은 정성스러운 시간이, 이 공간에 다 담긴 거였다.

4년 전 이대 앞에 ‘꽃길에서’란 첫 가게를 냈고, 2년을 한 뒤 지금 가게로 옮겼단다. 첫 꽃집은 공간이 너무 협소해 손님들이 줄을 자주 서야 했고, 그게 너무 죄송했었다고. 그래서 가게를 조금 더 넓혔고, 덕분에 몇몇은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게 됐다. 김씨가 바쁠 땐 밤샘 작업을 할 때도 있어 피곤했었는데, 쉴 수 있게 푹신한 소파도 들여놓았다.

가게 안은 그의 취향을 꼭 닮았다. 전체적으로 동그라미 같은 느낌이랄까. 조명과 화분, 장식해놓은 인형도 다 동글동글해서 어쩐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미니 장미 같은 꽃을 자주 사는 것도, 동그란 걸 좋아해서라니. 애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아름다운 꽃 또한 당연한 게 아니라고

꽃은 아름답게 다 손질돼 있는줄 알았더니, 웬걸. 하나하나 손이 다 가야 하는 거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꽃은 아름답게 다 손질돼 있는줄 알았더니, 웬걸. 하나하나 손이 다 가야 하는 거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꽃이 저절로 피는 게 아니듯, 아름다운 꽃다발 또한 그랬다.

날 것 그대로의 꽃들을 정성스레 손질하니, 꽃이며 이파리며 가시들이 산더미처럼 나왔다. 그걸 손질하는 동안 몇 번이나 찔렸고, 가위를 쓸 땐 잎에 가려진 손가락을 못 봐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다. “기자님, 손 조심하세요, 손!”이란 말을 어찌나 많이 하던지. 그러니 김씨 어머니 역시, 그의 성할 틈 없는 손을 보며 맘 아파하는 날이 많단다.

꽃 손질을 마치고, 줄기 끝을 대각선으로 잘랐다. 고생했으니 물을 조금이나마 더 마시라는 배려다. 그 사이 김씨는 꽃 냉장고를 깨끗이 청소하고, 화병을 시원스레 씻어 가져왔다. 맑은 화병에 꽃을 꽂아 냉장고에 넣으니, 비로소 반짝반짝 빛이 났다. 뭐든 애정이 필요한 것이었으리라.

손님이 있든 없든, 마지막 날이 결정되었든 그렇지 않든, 그의 성실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간을 잊게 하는 부지런한 움직임이었다. 틈틈이 가게를 청소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완성된 꽃다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 기분 좋은 기운이 가게 안에 가득해 힘이 저절로 났다.━꽃다발 만들다, 손에 쥐 날 뻔…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손에 쥐가 난다. 힘들다./사진=웃으며 바라보는 꽃집 사장님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손에 쥐가 난다. 힘들다./사진=웃으며 바라보는 꽃집 사장님

그리고 아내에게 줄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 보았다(계산은 했다!). 미적 감각은 참담하지만, 손재주는 나름 자부하던 터였다. 중학교 땐 비누로 사자 조각을 직접 만들었는데, 미술 선생님이 “이거 누가 만들어줬느냐”며 때렸다. 억울했던 기억(고도의 자랑).

디자인은 자신이 없어, 사장님이 추천한 주황빛 장미꽃과 소재들을 골랐다. 그리고 엄지와 손바닥 사이에, 꽃을 하나씩 끼워 나갔다. 장미꽃 하나, 소재 하나. 이렇게 꽃다발을 만들어나가는 거였다.

그런데 개수가 늘어나니 잡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줄기 방향이 각각 다른 곳을 향하게 잡아야 하는데, 모양이 자꾸 망가졌다. 김씨는 “꽃 모양이 하트를 그리게 하면 잘 된다”고 했다. 머리는 아는데 꽃은 자꾸 들쑥날쑥, 이상하게 됐다. 꽃과 줄기까지 10개가 넘어가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손에 쥐가 날 것처럼 욱신댔다. 보는 것과 딴판이었다.

포장도 어려웠다. 꽃다발 하나에 들어가는 포장지만 세 개였다. 이걸 이리저리 구기고, 접고, 펼치고 해서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괴상해졌다. 김씨가 쩔쩔매는 날 보며 웃었다. 웃기려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한 건데, 즐거워하니 아무렴 어떠랴. 그리 우여곡절 끝에 꽃다발이 완성됐다. 그는 “처음엔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집념이 대단하다”며 칭찬해줬다.━그렇게나 마음을 썼다

모 대기업에 입사한 기념 축하 꽃다발이라며, 그에 맞는 색감을 두루 쓰는 섬세함이란. 그러니 만족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사진=꽃집 SNS
모 대기업에 입사한 기념 축하 꽃다발이라며, 그에 맞는 색감을 두루 쓰는 섬세함이란. 그러니 만족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사진=꽃집 SNS

그러면서 그가 하는 일들이 새삼 대단해보였다. 게다가 틈틈이, 꽃집을 찾을 손님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야만 가능한 섬세한 배려들.

그날 예약된 조화를 다듬을 때였다. 꽃다발을 다 만들고 화병에 꽂으면 되는 거였다. 김씨가 갑자기 꽃다발 줄기 끝에 글루 건(공예 등에 쓰이는 접착 기구)을 쏴서, 접착제를 굳혀 동그랗게 만드는 게 아닌가.

“어차피 꽃병에 담길 꽃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으니, 김씨는 “사가는 손님이 아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꽃을 빼서 가지고 놀다가, 철사로 된 줄기 끝에 찔릴 수도 있다면서. 그러면서 줄기 끝을 하나하나 동그랗게 만드는데, 일순간 숙연해졌다. 꽃다발만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게 놓일 공간과 사람까지 상상하는 거였다.

꽃을 미리 예약받아 만들 때도 그랬다. 예컨대, 미술 전시회에 쓴다고 하면 이렇게 묻는단다. 혹시 작품이 어떤 것인지, 포스터를 보여줄 수 있는지, 받는 사람이 입는 옷은 무엇인지. 그 이미지를 떠올리고 상상해서, 그와 어울리는 꽃을 만든다. 또 어머니께 드릴 꽃이라 하면, 평소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보석을 하는지, 취미는 어떤 것인지 묻고 그를 고려해 꽃을 만든다. 그리 만든 색색의 꽃들을, 받는 이가 좋아하고 기뻐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결혼식 부케는 심지어 직접 결혼식장을 방문해 전달한다. 이모님이 부케를 함부로 놓은 적이 있었는데, 꽃이 상하는 게 마음 아팠다. 그 뒤론 빠짐없이 직접 가서 전했다. 직접 건네주고, 축하해주고, 어떤 방향으로 잡는 게 예쁜지까지 일러준 뒤에야 돌아선단다.━코로나19로, 꽃집은 마지막 날이 정해졌다

이곳의 바깥은 이미 겨울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곳의 바깥은 이미 겨울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런 좋은 꽃집도, 코로나19를 피하진 못했다.

입학도, 졸업도, 연주회도, 전시회도, 축제도 전부 줄줄이 취소됐다. 꽃가게엔 치명타였다. 3~4월엔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꺾였다. 월세 165만원(부가세 포함)에 부대 비용까지 합치면, 숨만 쉬어도 200만원이 넘게 나가는데 감당이 안 됐다. 정부 지원금으로 두어 번 월세를 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대가 2학기에도 온라인 개학을 하는 걸 보고 ‘이젠 안 되겠다’ 여겼다. 9월 29일까지만 하자고, 속 쓰린 결정을 내렸다.

꽃집 출입문을 하염 없이 바라보며, 그가 보냈을 시간을 짐작했다. 하루 내내 가게를 찾은 손님이 총 3명, 그중 꽃을 산 건 2명밖에 안 됐다. 꽃집 온도는 20도에서 22도로 유지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니 더 스산히 느껴졌다. 김씨는 패딩 점퍼를 가져다 놓고 입는다 했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주위를 둘러보니 텅 빈 거리, 오가는 이가 정말 적었다. 주변 가게 사장과 점원들이 더 많은 듯했다. 기다리는 맘을 김씨와 대화하며 달랬다. 그나마 그날은 둘이어서 나았고, 다른 날은 사장님 홀로 견뎠을 시간이었다.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서게 됐다.━그러니, 손님들은 일없이도 꽃을 사 갔다

손님들이 꽃집에 들러 남기고 간 수많은 선물들./사진=꽃집 SNS
손님들이 꽃집에 들러 남기고 간 수많은 선물들./사진=꽃집 SNS

꽃집의 마지막 날이 정해진 뒤, 손님들의 아쉬움은 도드라졌고 발길은 그에 맞게 분주해졌다. 진심은 어떻게든 전해지고 돌아온다고, 그게 작은 위로가 되는 나날이었다.

이대 한 학생은 “그냥 지나가다 들렀다”며 불쑥 찾아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또 다른 학생은 “일주일에 한 번씩 꽃을 바꾼다”며 왔고, 그렇지 않으면 “꽃집은 여기 밖에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또 사 갔다.

이날 찾아온 두 아이 어머니라는 손님. 서울 동작구로 이사갔는데, 여기 꽃이 예쁘다며 또 사러 왔다. 손에는 시원한 커피 하나를 들고 와, 김씨에게 마시라며 건넸다. 그에게 “이달 말까지만 영업한다”고 하자, “이제 어디서 꽃을 사느냐, 아쉬워서 어떻게 하느냐”며 어쩔 줄 몰랐다. 꽃을 배우고 싶다며, 나중에 꼭 집에 놀러 오라는 말도 했다.

같은 날 꽃집을 찾은 조씨는, 공교롭게 내게 제보했던 이대 학생이었다. 그는 “정말 취재하러 왔느냐”며 무척 반가워했다. 그러더니 사장님에게 추석 성묘 때 쓸 꽃을 주문하고, 둘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긴 대화를 나눴다. 꽃 주문을 마치고도 친근한 이야기가 오갔다. 김씨는 “지난번에 추천해 준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고 했고, 조씨는 “졸업 작품으로 만든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며 컴퓨터를 켰다.

꽃 사진을 예쁘게 찍어야 한다며, 시범을 보이는 손님. 어떻게든 널리 알리고 싶은 그 마음이 이리 먹먹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꽃 사진을 예쁘게 찍어야 한다며, 시범을 보이는 손님. 어떻게든 널리 알리고 싶은 그 마음이 이리 먹먹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김씨가 그날 만든 꽃다발을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자, 조씨의 핀잔 섞인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사장님. 사진을 이렇게 찍다니! 봐봐요. 이렇게 하면 더 예쁘게 나오죠? 그리고 이걸 누르면 뒤쪽 배경이 흐릿해져요, 이렇게 찍어 올리세요.”

그러면서 몸소 무릎을 굽히고, 시범을 열심히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걸 열심히 배우는 사장님과, 알려주는 손님, 그 둘의 뒷모습은 괜스레 먹먹했다.━그 꽃은, 이런 의미였어요

내가 만든 꽃다발. 아내는 예쁘다며, 모처럼 벽에 세워두고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며 좋아했다. 꽃의 매력이란 그런 것일까./사진=남형도 기자
내가 만든 꽃다발. 아내는 예쁘다며, 모처럼 벽에 세워두고 사진을 찰칵찰칵 찍으며 좋아했다. 꽃의 매력이란 그런 것일까./사진=남형도 기자

그가 만들어 전했던 꽃다발은, 이제껏 어떤 의미였을까. 손님들이 남긴 추억은 이랬다.

“제 졸업도, 부모님 생신도 여기서 했어요. 부케도 여기서 할 거란 말입니다.”

“아빠 승진 때, 입사 후 부모님께 드릴 돈 박스도, 결혼 기념일도 다 사장님께 부탁드렸는데,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에요.”

“졸업식 꽃은 꼭 여기서 하고 싶었는데, 좀 더 빨리 졸업할 걸 그랬어요.”

“여기서 애인에게 줄 꽃 샀었는데요ㅠ”
“정말 고맙습니다. 거의 5년간 예쁜 꽃들로 행복한 일들을 기록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가 만든 꽃들은 결혼의 시작이었고, 사랑의 고백이었으며, 태어나서 기쁘단 속 깊은 표현이었고, 고인이 된 누군가를 못 잊고 기억한단 의미였을 터였다.

나 역시 그날 밤, 아내에게 직접 만든 꽃다발을 건넸다. 어쩐 일로 꽃이냐며, 너무 예쁘다며, 뜻밖의 선물에 배시시 웃었다. 그걸로 충분히 좋았다. 아내는 꽃다발을 하얀 벽에 세우더니, 사진을 이리저리 찍었다. 그러더니 귀한 자리를 택해 세워뒀다. 집안은 환했고, 지날 때마다 행복해졌다. 꽃다발 하나가 그런 의미였다.━여전히 이 세상엔, 당신이 필요하다고

성묘 때 쓸 꽃다발의 크기를 손님이 정확히 모른다며, "손바닥 정도 된다"고 하니, 그마저도 정확히 재는 꽃집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성묘 때 쓸 꽃다발의 크기를 손님이 정확히 모른다며, “손바닥 정도 된다”고 하니, 그마저도 정확히 재는 꽃집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누군가 오래 남겨온 꽃집 이야기를, 이리 길게 한 이유가 있다. 비단 꽃집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힘들어하는 많은 사장님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가게 또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또 의미를 남겨 왔을 거라고. 지금은 상황이 나빠 주춤하고 있지만, 그게 끝은 아닐 거라고. 단지 ‘폐업’이란 단어 하나로 모든 게 다 사라지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든 진심으로 그런 이야길 하고 싶었다.

쑥스럽다며 밝히지 말아달라던 한 맛집 사장님이 그랬다. 장사만 25년을 했는데, 그동안 세 번 폐업했단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겪은 나날들이 고스란히 생각나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가게 안 공기와 그 안에 있었던 초라한 자신이 생각나 떠올리기조차 싫었다고. 그러나 그 시간에서 배운 게 분명히 있고, 하나씩 기억하고 나아지다 보니 좋은 날도 오더라고. 영원히 계속되는 힘듦은 없다고 말이다.

꽃집 사장님도 그랬다. 곧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이번엔 “로드샵이 아니라, 작업실 하나를 마련할 계획”이라 했다.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도, 효율적인 장사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4년간 경험치가 쌓였고, 여전히 무척 예쁜 꽃을 만들고 있고,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그걸 다른 말로 ‘희망’이라 부르는 게 아닐지.

당신은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니까, 돌아오길 바라는 이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들에겐 그냥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소중한 시간이고 추억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런 떡볶이는, 그런 드립 커피는, 그런 꽃다발은, 그런 기분 좋은 서비스는, 그런 운동은, 그런 섬세한 기술은, 세상에서 오직 당신만 가능한 것이니까.

그리고 꽃집 단골 손님 조씨는 이렇게 말했다. 맘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

“저는 ‘이별은 가볍게’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내일 다시 볼 것처럼 말하는 안녕이, 정말 우리를 금방 또 만나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시간이 흘러 잘 마른 나뭇잎들, 고단함은 날아가고 언젠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사진=남형도 기자
시간이 흘러 잘 마른 나뭇잎들, 고단함은 날아가고 언젠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짐을 하나씩 정리한다던 김씨가, 별안간 책을 잔뜩 꺼내왔다. 책장 사이사이엔 잘 말린 나뭇잎들이 들어있었다.

실은 꽃을 손질한 뒤 버려질 잎들인데, 언제고 쓰겠지 싶어 책에 끼워뒀단다. 그리고 한 두어 달이 지난 지금, 다시 꺼내본 것이었다.

수분이 날아간 초록·주황빛 잎과 갈색빛 줄기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김씨는 손님에게 선물할 화병을 정성껏 포장한 뒤, 이를 앞면에 붙였다. 그것 하나 덕분에 감성과 정성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니 유난히 긴 이 시간도 언젠가 귀히 쓰일 거라고, 그땐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알게 될 거라고.

저녁 8시부터 유독 어두워 맘 아픈 이대 거리를 지나며, 몇 번씩이고 그리 힘주어 되뇌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거짓 정보 유행병, 인포데믹

지난 9월 초 경기도 하남시의 한 냉면집에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 불만이 묻어나는 말투로 따졌다.

“이 가게 사장이 코로나 확진자라면서 이렇게 버젓이 장사를 해도 되는 겁니까?”

며칠 후에는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걱정스레 물었다. “사장님이 코로나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냉면집 사장인 전모씨는 죽지 않았고, 코로나에 걸린 적도 없다. 심지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거나 의심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어서 확진 검사를 받아본 적도 없다. 여느 때처럼 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어쩌다 코로나 사망자가 됐을까.

9월 초 하남시에 코로나 관련 허위정보가 퍼지자 하남시가 내놓은 경고문.
9월 초 하남시에 코로나 관련 허위정보가 퍼지자 하남시가 내놓은 경고문.

팬데믹의 시대, 바이러스만 사람을 위협하는 게 아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를 파고든 거짓 정보도 바이러스처럼 퍼질 수 있다. 일명 ‘인포데믹(infodemic)’이다. 인포데믹이란 ‘정보’(information)와 ‘유행병’(epidemic)의 합성어로 ‘거짓정보 유행병’을 뜻한다.

전 씨가 코로나 사망자가 된 경위는 확실치 않다. 지난 8월쯤 하남시의 한 공중목욕탕에 확진자가 다녀갔고, 전 씨 가게의 한 직원은 그와 목욕탕에서 같은 시간대에 머물렀다. 직원은 자가 격리를 하면서 검사를 받았으나 음성 판정이 나왔다. 소문은 목욕탕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게 직원이 아니라 사장으로, 음성 대신 양성으로 바뀐 것이다. 목욕탕의 확진자가 죽었다는 헛소문까지 퍼지면서 모든 거짓 정보가 하나로 모여 “냉면집 사장이 코로나에 걸려 사망했다”로 둔갑했다. 이 가짜 뉴스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카페를 타고 다니면서 빠르게 퍼졌다. 맘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고 한 여성이 하남시에 문의를 하면서 시 당국과 전 씨가 소문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됐다. 시는 지난 2일 시 홈페이지와 SNS 등에 허위 사실 유포 자제를 당부하는 호소문을 게시했다. 전 씨는 “그런 소문이 돌았을 때 당연히 손님이 줄었고, 물어보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서 가게를 사흘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했기 때문에 굳이 최초 유포자를 찾아서 처벌을 할 마음은 없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에 인포데믹의 힘은 강해서 어떤 거짓 정보는 세계적으로 퍼지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단 가짜 뉴스가 계속 제기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이를 언급하자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더 늘어났다. 트위터는 지난 2월 이런 코로나 음모설을 올린 금융·시장 전문 블로거 ‘제로 헤지’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 폐쇄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홍콩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의 인터뷰 영상에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 경고 문구를 삽입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홍콩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의 인터뷰 영상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가짜 뉴스’ 경고 문구를 삽입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홍콩 바이러스 학자 옌리멍의 인터뷰 영상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가짜 뉴스’ 경고 문구를 삽입했다.

인포데믹은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에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가 터져 나왔을 때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이다. 다만 코로나 때문에 불안과 우울 지수가 올라가고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포데믹이 더 빠르고 강력하게 퍼진 것이다.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 카페의 허위 명단이 메신저와 온라인 카페에 돌아다녔고, 지난 3월에는 ‘[긴급 속보]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한균희 교수님의 전언’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 연구 결과도 메신저에서 퍼졌다. 김지용 정신과 전문의는 “불안과 관련된 뇌 부위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판단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별개이다. 불안한 시기엔 전자 부위인 변연계 쪽에 더 힘이 쏠리고 후자인 전두엽쪽과의 균형이 깨져서 합리적인 판단을 못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미래가 불투명하고 화가 난 상태이다 보니 듣고 싶은 정보, 유혹적인 정보에 더 쏠리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인포데믹에 대응할 만한 법안이 현재로선 따로 없으며 지금까진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처벌했다. 대구지법은 지난 6월 ‘특정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았고 곧 폐쇄될 예정’이라는 허위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퍼뜨린 30대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생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특정 식당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허위의 게시물을 올렸다가 서울중앙지법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처벌 수위가 높지 않고 그 대상도 모호하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 인포데믹을 겪으면서 가짜 뉴스 처벌을 위한 법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독일은 소셜네트워크 법안을 제정해 소셜미디어에 가짜 뉴스 등 위법적 게시물이 올라왔을 경우 플랫폼 사업자가 24시간 이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700억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발의된 일명 ‘코로나 가짜 뉴스 이익 몰수법’은 국가 방역 활동에 대해 고의로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가짜 뉴스 유포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범죄 수익’으로 규정, 몰수가 가능하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남북문화체육협력특위 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미국 대선 전망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현안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남북문화체육협력특위 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미국 대선 전망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현안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북한에 의한 우리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여당 의원에 ‘가해자 편을 든다’고 주장하면서 여야 간에 설전이 오갔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태 의원은 “피해자, 유가족 입장에서 울분을 토해야 할 자리인데 김정은, 북한 통일전선부의 편지 한 장을 두고 ‘이게 얼마나 신속한 답변이냐’, ‘미안하다는 표현이 두 번 들어가 있다’ 등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하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태 의원은 “제가 서울 한복판에서 살해되고 김정은 위원장이 죄송하다고 편지 한 장 보내도 신속한 답변이라고 대응할 거냐. 정말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또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가해자 편에서, 가해자 입장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까 이야기하냐”고 덧붙였다.

그러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해자 편을 들었다는 표현은 굉장히 위험하고 여당 의원들의 사고와 인식을 모독·폄훼하는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편지를 보고 납득한 여당 의원들 누구도 없다”면서 태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다시 태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의원마다 통일전선부의 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것이 안타깝다”며 반박했고 여야 의원들의 설전은 한동안 계속됐다.

안 의원은 이어 피살 사건 이후 40여 시간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을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항의했다.

이어 “자꾸 듣다보니까 정말 과연 정권도 과거의 데자뷰가 되살아나는 거구나,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7시간 동안 진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래서 아이들을 그렇게 많이 수장시켰던 그것을 스스로가 인정하는 그런 꼴이 아닌가, 자신들이 그랬으니까 우리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하고는 하늘땅 별땅 차이다. 클라스가 틀린 정부”라며 “박근혜 정부가 그랬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그런 의혹을 하시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덧붙였다.김지영 기자 kjyou@mt.co.kr

[사건의재구성] 동기화된 연락처로 지인에 ‘무차별 폭로’
“원본 넘길테니 500만원 달라” 협박도..법원, 집행유예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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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온다예 기자 = 장경철씨(가명)는 지난 2월 모르는 연락처에게서 뜬금없는 문자를 받았다. 지인인 김숙희씨(30·가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시작한 글에는 김씨의 외도에 대한 내용이 속속들이 적혀 있었다.

‘최근 4~5개월 동안 김씨와 사랑을 나누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은 “김씨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친추'(친구추가)를 한 뒤 물어보라.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하겠다”는 취지 문자를 보내왔다.

이런 문자는 김씨 아버지에게도 전송됐다. “사위가 담배 안 피우는 줄 아시죠? 엄청난 꼴초입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김씨의 전 내연남이었다.

이지훈씨(37·가명)는 김씨가 ‘외도를 이어가지 못하겠다’며 이별을 통보하자 이같은 문자를 무차별로 뿌리는 범행을 저질렀다.

그의 범행은 3~4일간 이어졌다. 짧은 기간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이 기간 온갖 치부가 들춰진 김씨의 수치와 답답함은 형언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씨는 이후 ‘전 애인’ 김씨에게 “(나눈 대화 등) 캡처 원본 등이 담긴 USB를 싹 다 넘길테니 그걸 사가라”면서 “복구하는 데 500(만원)이 들었으니 (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넌 내옆에서 떠날 수가 업성(없어), 내가 하고싶은대로 모든 걸 하겠어. 대기하고 내가 오라고 하면 와야 돼”라면서 김씨에 대한 겁박을 이어갔다.

한때 밀회를 즐겼으나, 이제 김씨에게 이씨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됐다. 견딜 수 없던 김씨는 뒤늦게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 결과 이씨는 김씨가 온라인 게임 편의 등을 위해 알려준 구글 계정에 접속해 동기화돼 저장상태인 김씨 지인의 연락처 등을 취득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박성규 부장판사는 협박, 공갈미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 침해 등) 등 혐의를 받는 이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0시간의 사회봉사도 함께 명령했다.

서울남부지법(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 2020.6.15/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서울남부지법(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 2020.6.15/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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